재 박현희 기자
취재 박현희 기자
노래를 참 잘 부르는 사람이다. 가수 린 말이다. 2001년 ‘My First Confession’으로 데뷔한 후 ‘사랑했잖아’, ‘자기야 여보야 사랑아’ 등 사랑스러운 특유의 음색과 애절한 목소리, 공감 가는 노랫말로 발표하는 곡마다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스무 살에 데뷔한 그녀는 어느덧 서른 살이 되었고, 그간의 생각과 마음을 담아 책 ‘러블린의 멜로디북’을 펴냈다.
린은 “6집 앨범 활동 속에서 쓴 책이라 나오기까지 꼬박 11개월이 걸렸다”며 생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작가로 데뷔한 소감을 묻자 부끄러운지 음료에 꼽혀 있는 빨대를 만지작거리며 “첫 번째 앨범이 나왔을 때의 느낌과 비슷하다”면서 수줍게 웃었다. 책은 그녀가 써온 노랫말처럼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느낌이다. 2030대 여성이라면 공감할 수 있는 고민과 생각, 그리고 작사한 노랫말 뒤에 숨겨진 자신의 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인터뷰 준비를 위해 그녀의 책을 꼼꼼히 읽은 후 여러 자료를 검색했다. 11년 차 가수가 될 동안 여러 매체에서 인터뷰를 했지만 그녀를 제대로 표현한 것은 많지 않았다. 아니, 없었다. 그래서 궁금해졌다. 가수 린의 진심을, 서른 살 이세진(본명)의 속내를.
가수를 꿈꿔본 적 없다
어린 시절 린은 무척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였다. 교사의 질문에 제대로 답하지 못해 친구들의 놀림거리가 되면 홍당무처럼 빨개진 얼굴로 가방을 싸서 집에 온 적도 여러 번이다. 부모는 그런 린이 걱정돼 연기학원을 보냈다. 초등학교 4∼5학년 때 잠깐 다니긴 했지만 연기를 배우면서부터는 성격이 조금씩 활발해졌다. 일주일에 세 번, 학원이 있는 여의도로 가는 길이 어찌나 행복했던지 그 시간이 매일 기다려졌다. 그러나 친구를 사귀는 일은 여전히 소극적이었다. 중·고등학교 때는 음악에 집중한 나머지 학교에 빠진 적도 많다.
“음악을 듣고 싶은 날에는 학교에 안 갔어요. 부모님도 허락해주셨죠. 지금 생각하면 부모님께 참 고마워요. 속으로는 속상했을 텐데도 많이 믿어주셨거든요. 부모님은 언제나 즐겁게 인생을 살라고 강조하셨어요.”
학교에 가지 않을 정도로 음악을 좋아했지만 자신이 가수가 될 거란 생각은 한 번도 해본 적이 없다. 스스로 노래를 잘한다고 생각하지 않았기에 남 앞에서 노래를 불러본 경험도 적다. 그런 그녀에게 처음 가수라는 길을 열어준 것은 작사·작곡을 가르쳐주는 한 학원의 오리엔테이션이었다. “원래는 영화음악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작사·작곡을 가르쳐주는 학원에 다녔죠. 수업 첫날 오리엔테이션에서 노래를 불렀는데 선생님이 잘 봐주셔서 오디션 기회를 얻었어요. 하지만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은 해본 적이 없었기에 꼭 붙어야 한다는 절실함도 없었죠. 가수가 되고 난 후 노래에 대한 욕심이 생긴 거지 처음부터 가수가 꿈은 아니었어요.”
자신의 재능을 알게 된 그녀는 여러 오디션 끝에 가수로 데뷔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인정해주자 보컬로서 스스로에게 합격점을 주었다. 그러나 당시의 음악을 지금 들으면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로 부끄럽다. 노래에 교만함이 그대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얼마 전 차 안에서 그때 부른 노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차마 끝까지 못 듣겠더군요. 쓸데없는 애드리브도 많고, 기교에만 신경 쓴 모습이었어요. 노래에도 여백의 미가 있는데 그때는 진짜를 몰랐던 것 같아요.”
‘진짜’를 알게 된 건 스스로 가사를 쓰고 난 후부터다. 그녀 자신의 감정과 느낌을 담은 가사를 쓰고 몰입해서 노래를 불렀을 때, 그 노래를 들은 사람이 오롯이 그 가사를 이해하게 될 때 비로소 진짜가 된다고.
남자친구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
가수에게 중요한 건 진심이라고 믿는 그녀의 노랫말에는 지금까지 했던 자신의 사랑 경험이 녹녹하게 어려 있다. 가사를 쓸 때 사전처럼 자주 들춰보는 건 자신의 일기장. 10년 넘게 꼬박 적어온 일기장에는 사랑했던 사람과 처음 통화했을 때의 기분, 처음 손을 잡았을 때 평범한 표정을 지으려 노력했던 기억들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첫사랑은 아니었지만 스물다섯 살 때 만났던 사람이 제 음악에 가장 큰 영향을 미쳤어요. 결혼하고 싶을 정도로 깊이 사랑했거든요. 네 살 연상이었고, 2∼3년 정도 사귀었어요. (잠시 생각에 잠긴 후) 왜 헤어졌는지 기억이 잘 안 나요. 어느 날 정신을 차려보니까 그 사람이 제 옆에 없었어요. 이별한 뒤 못해준 게 너무 많아서 미안했어요. 그래서 오랫동안 그리워도 했죠. 그런데 얼마 전 결혼했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억장이 무너질 정도로 슬펐죠. 다시 이뤄질 수도 없고, 그런 생각을 해본 적도 없는데 말이에요. 물론 잠시 그러다가 말았지만요.”
사랑할 때는 물불 가리지 않고 올인하는 그녀에게 이상형을 물으니 자신의 책 58페이지를 펴서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이런 사람이요”라고 답한다. “내 앞에서만큼은 자존심 세우지 않는 사람, 보고 싶으니 당장 나오라고 이미 집 앞에 와서 불러내는 추진력 있는 사람, 남들에겐 무뚝뚝하지만 나한테만 보여주는 애교가 세 가지쯤 있는 사람…”. 열아홉 가지 항목을 하나하나 짚으며 “이런 사람이면 언제든 OK”라고 외친다. 첫 데이트할 때의 풋풋함과 오랜 연애에서 오는 권태로움을 동시에 가지고 사는 그녀. 남자친구는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다면서 농을 하는 그녀가 사랑스럽다.
“요리를 주제로 한 두 번째 책을 기획 중이에요. 요리학원도 다닐 생각이고요. 지금은 요리를 잘 못하지만 학원에 다니면 좀 나아지겠죠? 전 남편이 밖에서 먹는 음식보다 집에서 먹는 음식이 맛있다고 칭찬하면서 제가 만든 음식을 맛있게 먹어줬으면 좋겠어요. 가정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제 손으로 직접 하고 싶어요. 아기 옷도 만들어주고 싶고요. 성실한 주부가 되는 게 꿈이에요(웃음).”
11년 차 가수지만 무대 공포증 심해
린은 데뷔할 때부터 지금까지 꾸준한 사랑을 받아왔다. 1집부터 6집까지 어느 앨범 하나 대중에게 주목받지 않은 게 없다. 가수로서 상승곡선을 유지해온 그녀에게도 힘든 시간은 존재한다. 가장 아픈 시간을 보냈던 건 2집 타이틀곡 ‘사랑했잖아’로 활동하던 시기였다. 많은 사랑을 받은 시기에 힘들었다니 어떤 사연이 있는 걸까.
“‘사랑했잖아’로 많은 사람들이 알아봐주고 사랑해줘서 감사한 마음이었어요. 그러나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만큼 저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저에 대해 말하기 시작하더군요. 함부로 말하는 경우도 많았고요. 거리를 걸을 때도 많이 알아보고… 그때는 음악도 하고 싶지 않을 만큼 부담스럽고 힘들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의 생각은 교만이었어요. 팬들이 없으면 제가 어떻게 노래를 부를 수 있겠어요.”
린은 당시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성형 사실을 공개하며 더욱 주목을 받았다. 지금은 연예인의 성형 고백이 솔직하고 당당해서 보기 좋다고 말하지만 당시에는 낯선 모습이었다. 인터넷에는 금세 ‘파격 고백’이라는 제목으로 수십 개의 기사가 났고 악성 댓글도 많았다.
“자연스럽게 제 이야기를 하다가 나온 이야기인데 반응이 커서 놀랐어요. 사실 고등학교 친구들은 ‘도대체 어디를 성형한 거냐’며 물어요. 어릴 때도 예쁜 편은 아니었지만 나름 ‘매력녀’였는데 말이죠(웃음).”
자타공인 싱어송라이터인 린에게 보컬로서 스스로를 어떻게 평가하느냐고 물었다. 너무 겸손하게도 “100점 만점에 70점”이라고 답한다.
“사실 70점도 많아요. 노래 잘하는 가수라고 이야기는 듣지만 사실 실력이 출중한 편은 아니에요. 저는 보컬로서 제 단점을 너무 잘 알아요. 노래 부르기 전 습관도 안 좋고요. 무대에 오르기 전에 자주 토해요. 무대 울렁증이 심하거든요. 노래도 노래지만, 노래하기 전 습관도 중요한데 그런 것까지 합하면 70점도 만족해요.”
11년 차 가수에게 무대 울렁증이라니. 얼마 전 음악 프로그램 ‘유희열의 스케치북’에 나와 아이돌그룹의 댄스곡을 R&B 발라드로 각색해 소름끼치도록 완벽한 노래실력을 뽐내던 그녀였기에 믿어지지 않았다. 브라운관을 통해 본 그녀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면이었다.
“방송하기 전 늘 마음의 안정을 주는 약이나 차를 먹어요. 울렁증을 겨우 진정시킨 후에 무대에 서죠. 노래하는 게 힘들 때가 많아요. 실력을 100% 보여주지 못하는 것 같아 늘 아쉽죠. 사실 무대 울렁증보다 카메라 울렁증이 더 커요. 친구들과 장난치면서 사진 찍거나 ‘셀카’ 찍는 건 좋아하는데 매체에서 사진 찍을 때 번쩍이는 플래시나 방송 카메라의 빨간 불은 여전히 두려워요. 생각보다 되게 아마추어 같죠(웃음)?”
노래 부를 때 가장 편안한 곳은 콘서트 공연장. 자신의 음악을 사랑해주는 팬들과 만나는 자리에서 최고의 소리가 나온다. 12월 17∼18일
‘LoveLYN Romantic Party-Winter’s Melody’ 콘서트를 하는 그녀는 그런 설렘으로 공연을 준비 중이다.
“12월은 사랑하기 좋은 달이잖아요. 부부나 연인들이 함께 오면 좋은 공연이 될 것 같아요. 곧 캐럴 앨범도 나와요. 7집 앨범은 내년 초쯤 나올 것 같고요. 조금은 쉬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앞으로 계속 바빠질 것 같네요(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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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린에게 물었다
‘사소하지만 궁금한 스무가지 질문’
1 친한 연예인은 누구. 만나면 뭐하고 노나.
거미, 박효신, 김태우 등. 만나면 음악 얘기, 사람 얘기하고 논다.
2 친구들에게 불리는 별명은.
요즘엔 ‘러블린’으로 불린다. 키에 비해 발이 조그맣고 동글동글하게 생겨서 ‘아가곰’이라고도 하고, ‘이세발’ 같은 평범한(?) 별명도 있다.
3 노래 부를 때 독특한 표정은 콘셉트인가.
이제 그 표정 안 짓는다. 그 표정을 많이 지을 때 아파 보인다더라. 예뻐 보이고 싶은데 말이지.
4 자신이 생각하는 정신 연령은.
열일곱 살.
5 술은 소주? 맥주?
다 좋아한다. 가리는 것 없다. 굳이 둘 중에 하나를 고르자면 소주.
6 주량은 어느 정도인가.
소주 한 병 반.
7 좋아하는 안주는.
삼합.
8 린이 가장 좋아하는 건.
사람
9 가장 싫어하는 것은.
구속
10 긍정적인 에너지, 힘을 주는 것은.
가족. 23개월 된 조카가 최근 말을 하기 시작했다. 그 아이와 대화가 되기 시작했다는 게 너무 즐겁다. 조카에게 “이모”라는 소리를 들을 때 너무 기분 좋다.
11 노래 부를 때는 여성스러운 모습이다. 실제 성격은.
어릴 때와 달리 지금은 낯도 안 가린다. 한 2분 가리나? 여성스럽기도 털털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면을 다 갖고 있다. 내 안에 내가 너무 많다. 이런 면들은 음악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12 아이돌 중에 좋아하는 그룹은.
걸그룹은 2NE1, 보이그룹은 비스트.
13 가장 최근에 운 건 언제인가.
얼마 안 됐다. 누구랑 통화하다가 눈물이 났다.
14 눈물이 많은 편인가.
눈물이 없는 편은 아니다. 노래하다가도 갑자기 울컥해 눈물을 흘릴 때도 있다.
15 가장 최근에 떠난 여행지와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어디.
얼마 전에 일본을 다녀왔다. 가장 좋아하는 여행지는 뉴욕.
16 가장 좋아하는 음식과 그 이유는.
한식. 한국 사람이니까. 그중에 김치가 제일 좋다. 라면도 좋아하고. 김치랑 어울리는 모든 것을 좋아한다.
17 스무 살 이후로 가장 가난할 때(?) 통장 잔고는.
0원.
18 목소리가 정말 좋다. 관리법이 있다면.
여름이든 겨울이든 목에 스카프를 두르고 잔다. 감기 안 걸리는 게 제일 중요하니까 꾸준히 관리한다.
19 어떤 스타일의 음악을 좋아하나.
원래는 흑인음악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베란다프로젝트, 루시드폴 같은 음악이 좋더라.
20 슬픈 노래가 많은데 가장 아프게 사랑한 기억은.
아픈 사랑은 해본 적이 없다. 뒤돌아보면 다 좋았던 추억이다. 아프게 사랑하지 않는다.
[퀸 2010년 12월호]